완도군 약산면 약산도(조약도)
일반현황(2021년 4월 기준) 1개의 유인도와 6개의 무인도로 형성되었으며 삼문산(356m)을 중심으로 세갈래 산맥을 이루고 있고 지형이 타원형으로 형성되어 산세가 험하고 삼지구엽초와 129종의 약초가 자생하고 있으며 이를 먹고 자라는 흑염소가 유명하다. 면적26.70㎦ (완도군의 7.2%), 가구/인구 1,368가구/2,368명(남 1,199명, 여1,169명, 2020년 2,388명), 통반조직 5법정리 21행정리73반, 법정리명 장용리, 우두리, 관산리, 득암리, 해동리 문의전화 061)550-6451
연혁 약산면은 1916년 이전까지는 조약면이었으나, 전국행정구역 개편 때 고금면으로 통합되어 고금면 조약도로 불리었다. 1920년에 개교한 '사설개량서당'을 이어받아 1922년 현대식 학제에 맞춘 학교가 생겼는데 학교명을 조약학교라 칭하지 않고 '사립 약산학교'라 했다.그 경위는 옛부터 조약도의 산에는 약재가 많이 있어서 어느 산이든지 '藥山(약의 산)이다' 라는 말이 있었기에 助藥과 뜻이 비슷하고 어감이 좋고 부르기 쉬운 '사립 약산학교'라 했다. 고금면에 통합된 이후 일반인들도 조약도 사람과 고금도 사람들 사이에는 서로 경쟁의식과 견제 의식이 심했는데 특히 약산학교와 고금학교간에는 운동 경기나 각종 행사때에 경쟁이 치열해서 서로 싸우기도 했다. 이렇게 되는 과정에서 '조약도', '고금도'라는 말 대신 '약산, 고금'이란 말이 쓰이게 됨으로써 학교명이 지역명으로 변천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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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약산면은 일명 조약도(助藥島)로 불리며, 완도 본섬으로부터 동쪽으로 18.3Km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총 해안선 길이는 56Km, 해안선 총연장 76.5Km, 총 면적 1,934㎢이다. |
수난사 조약도는 약 390년전 임진왜란 이후 사재를 출연, 백성들을 모아 개간하여 임금으로부터 내려 받은 사패지(賜牌地)로 선조의 딸인 정명공주 관방의 장토(왕족이 사유로 관할하는 논과 밭)로 된 이후 대대로 왕실 장토로 내려 왔을 것으로 추정하고 조선말기 고종 황제때는 그의 아들 영친왕의 왕실 수라미(임금님의 밥짓는 쌀) 장토로 되어 대대로 주민들은 왕실관방에 조세를 바치고 살았다. 그러다가 일제 침략후 그들은 영친왕을 강제로 일본으로 보낸 다음에는 조약도를 그들의 장토로 삼아 갖은 수탈을 했고 한일합방후에는 고종 황실을 달래기 위해 조약도를 왕실의 관방에 양도하면서 주민 조세로 왕실 경비를 충당토록 했다. 그 후 일제는 왕실의 재정을 돕는다는 구실로 왕실장토인 조약도를 숙명여전(숙명여대전신) 재단에 팔아 넘기게 하는 한편 주민들에게는 그때까지 남의 땅에서 토지를 경작하면서 조세만을 내고 살아 왔으니 그곳에서 계속 살면서 토지를 경작하려면 땅값을 내놓으라고 했다. 이 조치에 주민들이 강경하게 반대하자 일제는 반대하는 주민주동자 10여명을 감옥에 가두었다. |